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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광화문을 들렀다. 시청역에 내려서 시청광장을 지나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부역단체(?!)의 시위가 있었고, 경찰병력으로 분리 보호되고 있는 퇴진 시위대가 있었다.
광화문 광장과 주변 골목에는 경찰병력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대기하고, 이동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일본 대사관 앞으로 이동하여 평화소녀상을 찾아보았다. 바로 옆에는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천막을 치고 있는 대학생들이 있었고, 청년 한명이 평화소녀상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었다.
조용히 시청역으로 돌아왔다.(돌아오는 길은 경찰병력이 차단하여 길을 건너야 했다.)
토요일
오전 잠시 회사에 들러 이번주에 작업을 위한 준비를 간단히 마치고, 안산에서 집회 참가를 위해 상경한 동생과 점심을 먹고, 양초, 생수, 김밥을 사가지고 시청광장을 향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지하도를 타고 시청역 방향으로 가는데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았다. 비집고비집어 시청역 출구로 나왔는데, 시청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데, 따라 부르려다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와 노래를 멈추었다. 대신 남대문 쪽으로 가서 오늘 집회를 위해 상경한 농민들을 보았다.
감기기운이 올라와 가져온 옷을 전부 껴 입고, 마스크까지 썼는데, 농민들 중 일부가 민복을 입고 농악(말그대로 농악 그 자체)을 풀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묵직한 장단을 보게 되었다. 흑백동영상에서 보던 뉴올리언스 초기 재즈 드러밍 동영상이 생각난다. 늘어난 난닝구를 입고 신기에 가까운 연주와 춤을 보여줬던 당시 흑노인네들과 이양반들이 콜라보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ㅋㅋㅋ...
다시 걸음을 옮겨, 덕수궁 앞 대한문으로 이동하였다. 3시경 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잠시 같이 놀고는 본 행사가 시작되었다.
지하철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보니, 그 곳에서 나온 인파 덕에 애를 먹었다. 짜증을 내거나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덕에 위험한 상황도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 같다.
5시
너무 많은 인파 덕에 혼란이 있었지만, 곧 풍물패와 브라질 타악팀이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양쪽 다 참 잘하고, 사람들이 예쁘다. 나는 깍두기 태평소가 되어 이쪽저쪽에 왔다갔다 했다. ㅋㅋㅋ
태평소 소리가 찌질해서 왜 그런가 했는데, 실내악용이었다. 야외용으로 갈아끼우고 돌격! 그런데, 공연팀을 놓치면 인파 때문에 따라잡기 힘들다.
경복궁역 앞
헤어진 한뫼식구들을 찾다 합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각자 행동, 브라질 타악팀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풍물패들과 함께 있다. 조용히 이동.
경찰 차벽 앞에서 상여퍼포먼스가 이어지고,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경철측에서 질서유지방송이 시작되었다.
허리가 아파서, 앉아서 쉬며 같이 온 동생과 김밥을 나눠먹고, 세종문화회관쪽으로 향했다.
세종문화회관, 광화문 광장
지인을 만나기 위해 서로 위치정보를 문자로 송수신 하였다. 통화도 잘 안되고, 통신도 자꾸 끊긴다.
자연재해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통신이 어려워지면 현대인들은 고립되는 것 같다. 집회를 하러 나온 수많은 사람들도 서로 만나기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잠시 쉬며 주담을 나눴다. 같이 온 동생과 이름이 같은 형님도 합류, 또 다른 후배도 합류...
주담은 꽃을 피우고, 주점 안의 사람들은 투쟁가를 부르면 서로 화음을 넣어주기도 한다.
2~3시간 가량의 주담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터울림 패가 뒤풀이굿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몇몇 취한시민들이 계속 굿판을 이어나가길 요구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몸싸움이 있기도 했다.
음... 거기서... 음... 그랬다... 기회가 되면 응앵응앵 울었던 당나귀 고기를 먹어야겠다.ㅋㅋㅋㅋ
동행한 두 형님의 독려에 태평소를 꺼내들었다.
시나위 허튼가락에서 더 연주해줄 것을 바라는 이들이 있어 어메이징그레이스와 아리랑을 연주했다.
(홀로아리랑 연주를 부탁받았는데, 해보질 않아서 그냥 아리랑~ 그런데 홀로아리랑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았다. ㅋㅋ)
고마운 호응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동행한 두 형님도 좋아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청와대쪽에 "석별의 정" 한방 날리지 않은게 아쉽다. ㅋㅋㅋㅋ)
귀가길에 새로 마주친 이들과 주담을 이어갔고, 종로바닥을 헤매다, 후배의 공간에서 눈을 붙였다.
그리고 또 다음날
하루종일 주담과 음식과 하늘공원에서의 시간과 광화문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아주 늦게 귀가했다.
그날 저녁
홍대 "짝태"에서 주담 중 티비 화면에 한 여학생이 의경들을 보고는 안타까워하며 우는 모습에 눈물이 터졌다.
지금도 그 장면을 기억하면 한참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이전에는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공감과 연결...
그 어떤 강력한 구호와, 획기적인 정책보다도, 우리의 인간성을 유지시키고 회복시켜주는 연결과 공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꾸 찌질하게(?) 눈물이 나오는 것에 대해, 내가 우울해서 그런다거나 한 건 아닌 것 같다. 우린 모두 같이 울 수 있다.
우린 서로 공감으로 연결된 하나이고, 결코 똑같이 움직일 수 없는 개개인이다.
같이 구호를외치는 사람도, 악기를 연주하고 퍼레이드를 구성하는 이들도,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이들도, 조용히 쓰레기봉투를 들고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모으는 청년도, 술에 취해 몸싸움을 하고 말리더 이들도, 주최측의 만류에도 시국선언문을 끝까지 낭독한 노학자도, 성숙하지 못한 행동을 하던 이들도, 모두가 개개인이고, 또 공감으로 연결된 하나였다.
시위에 나온 이들도, 여타 이유로 나오지 못한 이들도 모두 하나이고, 개개인들이다.
흠...
어쩜 이 사실이 집회현장을 기억하거나 하면 자꾸 눈물이 터지는 이유인 것 같다.
일상으로 돌아간, 계속 일상에 있던 모든 이들은 또 열심히 삶을 살아내고, 또 우리가 모였을 때 하나되고, 서로 개개인으로 존중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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